전주 삼백집에서 문득 오기사님의 일러스트를 보았다. 늘 오기사님의 책을 재밌게 보는 사람으로서 삼백집에서의 일러스트는 뭔가 반가웠다. 동시에 삼백집이 오기사님의 일러스트를 마음껏 우려먹는 다는 느낌도 동시에 들었다. 여기서 전주에서의 미스테리의 실마리가 보이는 듯 했다. 삼백집 옆에 ‘납작한 슬리퍼’라는 매우 모던한 분위기의 카페가 있는데, 이 카페의 인테리어와 설계에 혹시 오기사님이 개입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. 삼백집은 콩나물국밥집으로서 전주에서 맹위를 떨치는 집이지만, 사실 카페 경영 및 카페 디자인의 노하우는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혹시 오기사님이 여기에 개입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.
전주는 사실 카페 문화가 막 크게 발전한 동네가 아니다. 솔직히 한옥마을 길거리에 있는 카페들도 아직 수준이 높지 않고 ‘커피 발전소’ 같이 괜찮은 커피를 내놓는 카페도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먼 수준이다. 근데 전주에 맞지 않는 카페의 커피를 보여주는 동시에 카페 인테리어를 보여주는 카페들이 있는 데 내가 아는 두 군데 모두 이른바 전주 내 유명 음식점의 자제분들이 경영하며 동시에 그 유명 음식점 옆에 있는 커피샵이다. 이것이 말하는 것이 무엇일까? 재밌는 것은 이런 카페의 커피 수준이나 인테리어, 규모는 서울에서도 수준급임을 보여준다. 매우 재미난 현상이다.
사실 서울 사람들을 데리고 전주에 갔을 때 어디 까페를 갈 지 고민인 경우가 있는 데, 그냥 한옥마을의 카페를 느끼고 싶으신 분들은 한옥마을에 있는 괜찮은 커피샵을 데려가면 되지만, 영화제를 이유로 오신 분이나, 전주에서도 괜찮은 커피를 마시고 싶은 분들에게는 전주에서는 뭔가 크게 앞서가는 두 군데의 카페를 보통 추천한다. 물론 커피 발전소도 추천하는 카페이지만. 서울에서도 괜찮은 비프랜차이즈 카페가 많듯이 사실 전주도 괜찮은 비프랜차이즈 카페가 많다. 음식에 맛을 따지는 사람들이 커피 맛과 분위기를 안 따지겠는가? 다만 아직 커피 문화가 서울처럼 미친 듯이 발전하지 못했으며 동시에 서울의 인구와 비교할 수 없는 적은 인구의 도시이기 때문에 도시 문화로서의 커피가 아직 높지 않을 뿐이다. 예전의 전주와 지금의 전주가 가장 다른 큰 점은 서울과 전주를 왔다갔다 하는 나에게 있어서 괜찮은 커피를 마실 수 없던 전주에서, 괜찮은 커피를 마음 껏 마실 수 있는 전주로 바뀌었다는 점이 크다. 서울 사람들에게 덕진공원 근처에 있는 커피 발전소는 한번 정도 찾아보기를 권하는 카페 중의 하나이다.
전주의 커피 문화가 생각보다 점차 수준이 높아질 것이라 생각하는 가장 큰 부분이 프랜차이즈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전주에서 ‘커피명가’(대구가 시초)와 같은 마이너 브랜드가 커피의 질로서 자리를 잡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것을 엿볼 수가 있다. 2005-2008년까지만 해도 괜찮은 카페를 찾을 수 없던 전주는 괜찮은 커피샵을 짓고 괜찮은 마이너 프랜차이즈를 골라내면서 커피 문화를 무섭게 끌어 올리고 있다. 모카 마타리를 핸드드립으로 마실 수 있는 카페가 전주에서는 지금도 어렵지 않게 알기만 하면 갈 수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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